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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상식

옛 김제평야의 너른 들을 적시던 저수지 벽골제

by 오늘도 스마일^^ 2020. 12. 20.

옛 김제평야의 너른 들을 적시던 저수지 벽골제 

벽골제 이름의 유래

벽골제를 쌓을 때 바닷물이 이 곳까지 밀려와 공사를 망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공사 감독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벽골", 즉 푸른 뼈를 흙과 섞어 쌓으면 공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감독은 말뼈가 푸르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것을 흙과 함께 섞어 쌓아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벽골제"라 지어졌다. 

 

사적 제111호 벽골제

벽골제는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저수지로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이다. 백제 비류왕 27년(330)에 만들어졌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몇 차례 수리를 하였다. 그러나 이익이 적고 폐단이 많아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다가 1925년 일제가 이 제방을 관개용 수로로 개조하여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다. 벽골제는 우리나라 벼농사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농업 국가로서 일찍이 수리 시설을 갖춘 조상의 슬기를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현재 포교리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월승리까지 약 3km에 달하는 둑이 남아 있다. 

 

벽골제에 얽힌 전설

벽골제 공사를 감독하기 위해 나라에서 파견 나온 원덕랑이 김제 태수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태수의 딸 단야가 원덕랑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원덕랑에겐 이미 고향에 약혼자 월내가 있었는데 말이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성질이 고약한 청룡이 둑을 무너뜨리자 처녀를 용에게 바쳐야 공사가 무사히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마을에 돌았는데, 마침 월내가 원덕랑을 만나러 오자 김제 태수는 월내를 청룡에게 바칠 계획을 세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단야는 스스로 청룡의 제물이 되어 둑을 완성시키고 원덕랑이 월내와 혼인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현재 벽골제 공사 때 스스로 청룡의 제물이 되어 둑을 완성시킬 수 있게 했던 단야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누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단야루이다.